소원-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거야

권상희 영화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13-10-28 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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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파서
너무나 화나서
너무나 슬퍼서
너무나 따뜻해서 실컷 울 수 밖에 없었다.
영화 <소원>은 우리가 결코 마주하기 싫은 세상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진정 바라는 세상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 소원

비 오는 날, 등굣길에 우산을 씌워달라는 아저씨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것이 소원(이레)이의 잘못 이었던 걸까?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된 아이. 소원이가 버텼을 그 무서운 시간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저 살아있다는 것을 감사하기에는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9살 어린 영혼이, 소박하고 평범하기만 한 가정이 감당해내기에는 그 고통이, 그 상처가 너무나 가혹하기만 하다.

급기야 사건은 뉴스에 보도가 되고, 동훈(설경구)과 미희(엄지원)는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이를 1인 입원실로 서둘러 옮긴다. 그들에게는 분노할 겨를도, 슬퍼할 겨를도, 아파할 겨를도 없다.
“아빠, 내가 뭐 잘 못 한 거 있어?”
세상의 시선을 피해야만 하는 아이. 피해자가 마치 가해자라도 된 듯 숨어야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아,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이렇게 만든 것인지……
끔찍했던 순간이 떠오르기라도 하듯, 아빠의 손길 조차 강하게 거부하는 아이. 소원이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소원이 편이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상담 선생님 정숙(김해숙)의 노력, 평소 소원이가 좋아하는 코코몽 분장을 하고 아이에게 웃음을 찾아주려고 땀 흘리며 애쓰는 미희와 경찰언니, 그리고 이웃 영석이 엄마(라미란).
경제적인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기꺼이 도움을 주는 동훈의 직장 동료 광식(김상호). 쪽지를 적어 집 앞에 붙여놓는 소원이의 학교 친구들. 보디가드를 자처하는 영석이.
무뚝뚝하기만 했던 동훈은 자신을 거부하는 딸에게 몰래 코코몽 분장을 하고 친구가 되어준다. 그렇게라도 해서 아이의 곁에 있고 싶은 아빠다.
모두의 노력으로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리며, 치유되고 있는 아이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다시 내딛는다. 그들의 진심 어린 응원은 고통으로 얼룩진 순수한 영혼에게 그렇게 큰 힘이 되어 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법정에 간 소원이는 그 끔찍한 얼굴을 다시 보게 된다.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도리어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완벽한 연기를 펼치는 인면수심의 인간.
모두에게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 분노로 뒤범벅되어 버린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비가 오는데 우산을 씌워달라는 아저씨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던 소원이의 곱디 고운 마음이 무참히 짓밟혔는데, 평생 배변주머니를 달고 살아야만 하는 장애를 갖게 됐는데, 법이란 잣대는 그 극악무도한 가해자에게 고작 징역12년 형을 선고한다. 취중이었다는 편리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핑계거리는 피해자에게 가혹한 형벌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 모두의 바람대로 끝까지 소원이 편이 되어준다.
동생 소망이를 바라보는 아이는 “왜 태어났을까?”가 아닌 “니 참 태어나길 잘했다” 를 말한다.
견뎌내기 힘든 상처와 고통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소원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만 한 거라고 느낀 게 아닐까? 가족, 친구, 이웃이라는 이름의 그들이 뿜어내는 따스한 온기는 날 선 세상을, 무섭기만 한 세상을 버텨나갈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고통,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으로부터 치유되기 시작한다. 절망의 끝에서 기적처럼 다가 온 희망…아마도 어린 소원인 그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늘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사람들…내 곁에 있는 가족, 친구, 이웃…그들이 있어 참 다행이다.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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