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가능한 세상을 꿈꾸며......

권상희 영화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14-01-16 14: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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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쿵쾅거린다.

코끝이 찡해지더니 꾹 참고 있던 눈물이 흐른다.

그러더니 이내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다른 이의 삶을 통해 아주 오랜만에 심장 박동이 요동치는 경험을 했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감정들이 솟아오른다는 게 이런 걸까?

아주 오랜만에 맛본... 그래서 생경한 느낌까지 드는 가슴 울림 현상...

영화 <변호인>은, 아니 1980년대를 가슴 뜨겁게 살았던 송우석이란 인물은 그의 삶을 바라

보는 이들에게 그렇게 커다란 하나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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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중한 돈을 지켜드립니다”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자문에 이르기까지 돈이 된다면 주변사람들의 삐딱한 시선도 개의치 않는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당신의 소중한 돈”은 공사판에서 노동하고, 밥값이 없어 식당을 도망 쳐나와야만 했던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돈”일 수밖에 없다.

그는 아닌 척 위선을 부리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일하는 변호사임을 스스로 인정한다.

사람들은 그를 속물이라 비웃지만 그건 빽 없고, 돈 없고, 자신의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스펙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치열한 삶의 자세일 뿐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는 공사판에서 지었던 아파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7년 전 주지 못했던 밥값을 갚으러 가족과 함께 국밥집에 간다. 돈이 삶의 목표일 수밖에 없었던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의 실종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제가 하께요. 변호인, 하겠습니더”

온갖 고문으로 피멍이 든 진우의 몸을 본 우석은 그렇게 전국구 변호사가 될 기회를 스스로 놓아 버린다.

치열한 조사와 그보다 더 치열한 변론. 그에게 삶의 목표는 이제 사람이고, 정의이다.

하지만 정의가 실종된 세상에서 법은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이다. 울림 있는 우석의 말은 공권력으로 무장된 그들에게 있어 공허한 외침, 그 이상일 수 없다.

“세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하지만 바위는 죽은기고, 계란은 살아있는기다. 계란은 언젠가 바위를 뛰어넘을 거라고. 난 절대 포기 안한다.”

없던 죄가 만들어지고, 소시민이 빨갱이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전진하고, 정의를 목놓아 외쳤던 우석. 결코 포기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 질렀지만 귀를 닫아버린 세상은 선물하듯 그들에게 감형을 해준단다. 죽은 바위에게 대항해 살아있는 계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그 이상일 수 없었던 어둠의 시대.

변호인에서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선 우석은 계속해서 그 대항을 멈추지 않는 투사였고, 그를 지지하는 동료 변호사들의 끝없는 호명은 어둠 속에서도 정의가 살아있음을 뜻하는 은유가 아닐 수 없다.

영화는 화려한 테크닉도, 볼거리도 없다. 단지 한 시대를 가슴 뜨겁게 살았던 송우석의 삶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심장박동이 마치 내게도 전이된 것처럼 전에 없이 가슴이 미친듯이 요동치는 것을 느낀다.

정의라는 두 음절의 단어가 마치 윤리 교과서에서나 어울리는 말인 것처럼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해버린다는 생각이 종교보다 더 큰 믿음으로 다가오는 이 시대에 사람을 향한 뜨거운 휴머니즘이 이렇게 크게 다가올지 미처 몰랐다.

송우석의 삶을 진정으로 살아낸(연기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배우 송강호가 없었다면 이는 아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명품연기, 국민배우라는 너무나도 뻔한 수식어를 넘어 그는 실로 “대단한 배우”임에 틀림없다.

영화의 폭발적인 인기 탓인지 <변호인>을 두고 정치적이라느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했다느니 설왕설래가 많은 요즘이다. 그런 것들을 두고 설전을 벌이기 이전에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 가슴 뛰는 인간애, 이를 다시금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

영화에서는 끝내 이루지 못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가능한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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