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1960) 욕망과 파멸, 꿈의 서사시

권상희 영화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14-02-12 17: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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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 감독, 기이한 영화스타일로 주목 받은 故 김기영 감독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녀>(1960)이다. 이 작품은 얼마 전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과 더불어 국내 영화전문가들이 뽑은 역대 최고의 한국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단순 치정극을 넘어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욕망과 파멸이라는 주제로 관철시키는 작품의 힘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시대의 간극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하다.
흑백화면 속에 담겨진 인간의 욕망은 어떠한 컬러보다도 막강한 이미지를 갖는다.
애초에 인간의 욕망은 선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시간이 흘러 시대가 바뀌어도 부정하기 힘든 욕망에 관한 일종의 정의 같은 영화.
바로 <하녀>이다.

하녀 (1960 하녀 (1960)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는 젊은 하녀의 유혹, 그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동식도,가족도, 새로 장만한 2층 양옥집도 모두 지켜내야만 하는 동식의 아내, 하녀를 침입자로 생각하고 그녀를 늘 감시하듯 바라보는 아이들.
한 방에서 재봉틀을 돌리고, 피아노를 치며 웃고 떠들던 동식의 가정은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큰 행복을 함께하는 듯 보였다. 적어도 하녀가 그들의 공간을 침범하기 전에는…
하지만 공간의 확장은 행복의 크기를 키워주지 않았다.
웃음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눈초리만이 있을 뿐이다.욕망의 물고 물리는 혈투가 벌어지는 곳, 새로운 행복을 꿈꾸던 2층 양옥집은 그렇게 변질되고 만다.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곳, 그러나 그곳에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단지 자신의 것을, 곧 자신의 것이 될 것들을 지켜내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아내로 인해 동식의 아이를 일부러 낙태한 하녀도, 하녀의 속임수로 죽은 동식의 아들도 그들에게 있어 슬픔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단지 이것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서만 전전긍긍해 한다.

슬픔이 사치라도 되듯, 아들의 죽음에도 다시 재봉틀을 돌리는 아내,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하는부부의 약점을 악용해 동식을 마치 자신의 소유라도 되는 듯 여기며 더욱 당당해져만 가는 하녀, 여전히 하녀에게 끌려 다니며 정욕을 거부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남편 동식.
이들의 욕망은 결국 삶의 끝인'“죽음'을 향해 내달리고야 만다.
하녀의 낙태와 아들의 죽음은 이들에게는 전초전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가정을 지켜내려는 아내는 하녀를 죽이려고 하고(결국 성공하지 못하지만), 하녀는 동식에게 함께 자살 할 것을 강요한다. 2층 양옥집의 안주인이 되려던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렇게 해서라도 동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공간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킨 이는 아무도 없다.하녀와 함께 쥐약을 탄 물을 마신 동식은 그녀의 거칠고 강한 손길을 뿌리친 채 고해성사라도 하듯 생의 마지막을 아내 곁에서 맞이한다.
남편의 죽음에 너무도 뒤늦게 자신의 물욕을 후회하는 아내.
하지만 후회의 순간에 남은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일부러 연출상의 이유로 액자구조를 취한 것인지, 아니면 그 당시 검열 때문이었는지, 영화는 신문에 난 사건을 재구성한 것으로 연극적인 형태의 메시지를- 욕망을 경계하라는- 남기며 끝이 난다.
근대라는 시대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긴 하지만 강력한 폭풍우가 휘몰아친 후, 갑자기 힘이 빠져버린 결말이라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극단을 치닫는 욕망은 꿈 속에서만 가능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바람을 담은 것이 아닐까?
그것이 판타지를 넘어 현실이 되는 순간, 파멸에 이른다는 경고- 그 참혹함은 시대의 간극을 넘어서 누구나 공감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용(中庸)… 과연 욕망이란 두 글자에 중용이 가능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마주하고, 삶에 있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문제이긴 한데,답을 내리긴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정답은 아니지만… 주체할 수 없는 욕망, 그것은 잠시 꿈의 서사시로 남겨놓자.
'꿈'이야말로 누구에게 들킬 필요도 없고, 피해를 주지도 않는 배설의 공간으로 탁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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