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즘 행복수업] 말엔 책임이 따른다

EK BOOK / 기사승인 : 2014-12-19 11: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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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즐거운 말을 먹고 자란다



말하기





해도 안 해도 후회하는 말 …… 원칙, 방법을 알면 쉽다.

즐거운 말을 먹고 자라는 사랑을 기억하라.

말이 전부다. 말이 시작이요 끝이다.

“말이 곧 문명이다. 아무리 ‘말도 안 될지라도’ 말은 사람과 사람을 붙여놓지만, 침묵은 사람과 사람을 떼어놓는다(Speech is civilization itself. The word, even the most contradictory word, preserves contact.it is silence which isolates).”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이 한 말이다.

하지만 말은 고민의 원흉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 도 후회한다고 한다. 말도 비슷하다. 말을 하면 설화(舌禍)의 일격을 당할 수 있고 안 하면 소통의 부재와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 과묵한 사람 중에는 자신이 어쩌다 한 말에 대해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다. 착한 사람들이 다. 세네카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말을 곱씹어보면 차라리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부럽다(When I think over what I have said, I envy dumb people).”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

말과 결혼이 해도 안 해도 후회할 거라면 차라리 하는 게 좋다. ‘말은 잘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고 했던가. 말을 잘하려면 말의 원칙, 방법을 알아야 한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는 말의 원칙에 유념해야 한다. 오늘날은 ‘여남(女男)평등사회’이니 ‘여아일언중천금’ 이기도 하다. 여자건 남자건 사람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런 무게가 없는 말에 천금의 무게가 실려야 한다.

말하는 법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 할 말과 안 할 말, 남 에게 상처 주는 말, 남을 행복하게 하는 말의 종류에 대해 알 기 위해서다.

“사랑은 즐거운 말을 먹고 자란다(Pleasant words are the food of love).”

오비디우스의 말처럼 남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담긴 말은 화자와 청자,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한다. 반면 잘못된 화법도 있다. 예컨대 ‘무슨 무슨 책 읽으셨나요?’, ‘뭐 뭐 알아 요?’라는 말은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자신의 학식이 부족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분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말이다. 상대방이 어떤 책을 안 읽었고, 또 어떤 정보에 대해 모른다는 전제 로 하는 말은 나쁘다. 아무리 중립적으로 별 생각 없이 하는 말이라도 “당신은 ‘가방끈’이 짧아 모를 것 같은데 내 한 수 가르쳐주지”라는 속뜻이 담겼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것이다.

말의 오해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의 말을 곱씹어볼 일이다.

“누구나 진실 되게 말할지 모르지만, 요령있고 신중하고 ‘꽉 차게’ 말할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소수다(Every man may speak truly, but to speak methodically, prudently, and fully is a talent that few men have).”

재주는 공부로 습득할 수 있다. 침묵이 미덕인 동양보다 토론 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말하는 재주에 대한 공부가 맹 렬하다. 다수가 말을 잘하는 서구 사회이기에 오히려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고민이 크다. 그래서 <서먹서먹한 침묵을 깨는 완벽한 어구(Perfect Phrases for Icebreakers)> 같은 화술(話術)관련 책들이 인기다. 서양의 말하기 학습열은 말이 상대적으 로 서투른 동양이 배울 점이다.

자신감을 갖고 배워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말 잘하는 사람은 없다. 태어났을 땐 ‘응애 응애’밖에 못한다. 랠프 에머슨 이 한 말은 그런 의미에서 위안을 주기도 한다.

“모든 위대한 화자는 처음엔 변변찮은 화자였다(All the great speakers were bad speakers at first).”

서양도 원래는 동양과 마찬가지로 침묵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였다. 이에 관한 영국 속담이 있다.

“남들이 말을 걸 때만 말하라(Speak when you are spoken to).”

이 속담의 원저자는 영국 비평가 겸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 (Thomas Carlyle, 1795~1881)인지도 모른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

고대 그리스의 독재자 디오니시우스(Dionysius, B.C.430~ B.C.367)도 이렇게 말했다.

“침묵보다 나은 말을 할 자신이 없으면 침묵하라(Let thy speech better than silence, or be si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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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행이 불일치하면

행동이 시끄러워 말이 들리지 않는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언행일치가 말의 원칙이다. 랠프 에머슨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행동이 내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 당신이 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What you do speaks so loudly that I cannot hear what you say).”

속마음을 모두 말로 치환하면 안된다는 게 말의 원칙이다. 속마음을 다 털어놓으면 친하게 될 수도 있지만 상대방에게 큰 부담을 줄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말로 속마음을 털어놓지만 현자들은 말로 속마음을 감춘다(Speech was given to the ordinary sort of men, whereby to communicate their mind; but to wise men, whereby to conceal it).”

영국 성공회 주교 로버트 사우스(Robert South, 1634~1716)가 한 말이다.

청중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이해시키려면 청중이 경청하도록 해야 한다. 경청을 이끌어내는 비책은 유머다.

“사람들을 일단 웃게 만들면 그들은 경청한다. 그러면 그들에게 거의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Once you get people laughing, they’re listening and you can tell them almost anything).”

미국 극작가 허버트 가드너(Herbert Gardner, 1934~2003)가 한 말이다.

딱 하나 더, 말의 원칙을 살핀다면 윈스턴 처칠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짧은 단어가 최고요, 오래된 말이 최고 중에서도 최고다 (The short words are best, and the old words are the best of all).”

이런저런 화술을 배워 상당한 경지에 이르면 신기하고 중대한 변화가 있다.

“나는 내가 하는 말에서 배우는 게 많다(I have learnt a good deal from my own talk).”

캐나다 작가 토머스 챈들러 핼리버턴(Thomas Chandler Haliburton, 1796~1865)이 한 말이다. 화술이 곧 지배술이다.

“수사학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기술이다(Rhetoric is the art of ruling the minds of men).”

플라톤(Plato, B.C.427~B.C.347)이 한 말이다. 시인, 개혁가의 길도 말에 달렸다.

“남들은 생각만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법을 알면 시인이나 현인(賢人)이 된다. 남들은 생각으로만 할 수 있는 것 을 감히 말하는 자는 순교자나 개혁가, 혹은 순교자이면서 동시에 개혁가인 인물이 된다(To know how to say what others only know how to think is what makes men poets or sages; and to dare to say what others only dare to think makes men martyrs or reformers or both).”

영국 작가 엘리자베스 찰스(Elizabeth Rundle Charles, 1828~1896)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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