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시인, '문학세계문학상' 수상

강민옥 / 기사승인 : 2014-06-13 16: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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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시인 한병권 사진=시인 한병권


한병권 시인(57)이 월간 <문학세계(발행인 김천우)>가 실시한 제11회 ‘문학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한병권 시인은 지난 2012년 첫 시집 ‘비어있음에 대하여’를 발간, 최근 ‘문학세계문학상’ 시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수상 시는 ‘흐린 오후’.

‘문학세계문학상’ 심사위원장 이수화 시인은 “시인은 선(禪)적 체험에 바탕한 상상과 형상화의 힘으로 무아(無我)의 시학을 시의 콘텐츠에 보여주고 있다”며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자유 영혼을 구가하고 나아가 평상심 혹은 열반을 꿈꾸는 것이 가능함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어 “시인의 시는 T.S. 엘리어트의 ‘사상과 감정의 통합된 감수성’에서 창발한 모더니즘 기법의 소산”이라며 “특히 ‘흐린 오후’는 순수하고 원시적인 정념을 형이상학파 기법으로 관능적으로 구체화한 아름다운 시”라고 덧붙였다.

한 씨는 영남대 법학과 재학 시절 김춘수 조동일 교수의 사사를 받았다.

초등학교 신문사 사장으로 활동한 밀양초등학교때부터 시를 발표해온 그는 1978년 월간 <시문학>의 대학생문예모집과 영대문화상에 잇달아 시가 당선되며 문재(文才)를 발휘했다.

국민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한 한 씨는 취재기자 생활에 전념하며 묵언과 절필을 선언했다. 그러던 그는 2005년 계간 농민문학에 ‘나를 찾은 일’ ‘몰라가기’ 등 형이상학파 시로 분류되는 시편으로 주목을 받으며 신인상을 수상, 정식 등단했다.

제22, 23대 문협 이사장을 지낸 신세훈 시인은 그의 시와 관련, “한병권의 시는 철리가 깊이 숨어 있는 과묵한 참나시(眞我詩)”라고 평하고 “선시(禪詩)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선시(禪詩)에 가까운 메타피지컬 포임 족보에 속하는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흐린 오후



비 오는 날, 죄를 짓는다
후두둑후두둑 뒤란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박명(薄明)의 구름안개에
미쳐버린 죄인이다 위험한 그리움이다
순식간에 땅끝까지 번지는
질병이다 꿈꾸는 식물들위로
죽음이라도 좋은 잿빛 하늘을 덮고
비극이라도 좋은 비바람을 때린다
비오는 날, 생활 하나 망설임없이 무너뜨리고
우울한 풍경의 뒷자락을 찾아 길을 떠난다
낙엽 구는 깊고 어두운 두멧구석쯤에서
그리하여 죄인만큼 오래오래 외로왔던 여인을
만나고 싶다
화투패보다 붉고 화려한 술잔을
그 여인 넉넉한 젖가슴 앞에 돌리고 싶다
슬프도록 혼령을 깨우며 외치다가도
바다는 잠들고
맑고 또렷한 하늘과 빌딩이
백주에 도심에 되돌아오더라도
죄다운 죄를 지을 줄 아는 이에게
그것은 또다시 아름다운 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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