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독서 : 마음 = 운동 : 몸”
독서하려면 ‘즐거운 딴전’을 피하라.
영어 단어를 익힐 때 영한사전보다 영영사전이 더 유용한 경우가 있다. 특히 영어 단어와 우리말 단어가 일대일 대응이 안 되는 경우에 말이다. ‘디스트랙션(distraction)’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옥스퍼드영영사전(OALD)’에 따르면 ‘distraction’ 은 (1) ‘여러분이 하고 있는 활동이나 생각으로부터 주의를 뺏는 것(a thing that takes your attention away from what you are doing or thinking about)”이며, (2) “여러분을 즐겁게 하는 활동 (an activity that amuses or entertains you)’이다. 그렇다면 ‘distraction’ 은 ‘즐거운 딴전’이라고 할 수 있다. ‘딴전’의 표준국어대사전 정의는 ‘어떤 일을 하는데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일이나 행동’이다.
즐거운 일이 훼방 놓는 것 중에는 단연 독서가 있다. 영국의 언론인이자 정치가인 리처드 스틸(Richard Steele, 1672 ~1729)은 말했다.
“읽기와 마음의 관계는 운동과 몸의 관계와 같다(Reading is to the mind what exercise is to the body).”
누구나 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누구나 독서도 해야 한다.
책은 베개, 수면제, 가구가 아니라 즐거움, 자랑의 원천이다
독서를 방해하는 ‘즐거운 딴전’에는 인터넷, TV, 게임이 대표적이지만 전화도 문제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는 전화 때문에 읽는게 불가능하다. 기차를 탔을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It is impossible to read in America, except on a train, because of the telephone).”
지금은 휴대전화 때문에 기차마저도 독서의 안전지대가 아 니다. 그렇다고 독서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기회를 포기할 수 없다. 러셀은 이런 말도 했다.
“독서에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 하나는 책을 즐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책을 읽었다고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There are two motives for reading a book: one, that you enjoy it; the other, that you can boast about it).”
불행히도 책 읽기는 즐거움 순위에서 한참 밀리기 쉽다. 그 결과를 영국의 비평가 앤서니 버제스(John Anthony Burgess Wilson, 1917~1993)는 다음과 같이 예측하기도 했다.
“책을 소유하는게 독서를 대체하게 된다(The possession of a book becomes a substitute for reading it).”
책은 베개가 되기도 하고 수면제가 되기도 한다. 영국의 작가이자 성직자 시드니 스미스(Sydney Smith, 1771~1845)는 이에 대해 센스 있는 말을 남겼다.
“책보다 더 매력적인 가구는 없다(No furniture is so charming as books).”
책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된 끝에 언젠가는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책을 사는 사 람 중 열에 아홉은 그 책을 읽지 않는다. 딴전도 문제지만 책 자체에 문제도 있다. 한두 페이지 읽다 말게 되는 데에는 저자의 잘못도 크다.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는 이렇게 탄식했다.
“얼마나 많은 좋은 책들이 비효율적인 서두(書頭) 때문에 무시당하는가(How many good books suffer neglect through the inefficiency of their beginnings)!”
첫 몇 페이지만 잘 참아내면 상대적으로 본문은 쉽다. 물론 본문 읽기가 수월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 또한 작가의 노력에 달렸다.
“노력이 필요 없는 읽을거리는 집필 때 대단한 노력이 들어 갔기 때문이다(When something can be read without effort, great effort has gone into its writing).”
스페인 극작가 엔리케 하르디엘 폰셀라(Enrique Jardiel Poncela, 1901~1952)가 한 말이다.
독자와 필자의 노력이 만나면 견우와 직녀가 만날 때보다 아름답다. 물론 장르에 따라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 경우도 있 다. 성직자이자 작가였던 찰스 칼렙 콜튼(Charles Caleb Colton, 1780~1832)의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맞은 책은 피해야 한다.
“많은 책이 독자들에게 아무런 사고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저자들도 별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Many books require no thought from those who read them, and fora very simple reason.they made no such demand upon those who wrote them).”
지혜와 경험은 독서의 목적이자 전제 조건이다
노력이 필요한 즐거움은 한 차원 더 높은 즐거움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식 도락이나 미식가 수준에 도달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엔터테인먼트가 주목적인 책에서는 누구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애서가(愛書家), 독서가(讀書家)라는 자타의 공인을 받으려면 멀고도 험한 고통의 길을 가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다. 돈을 벌어야 가난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독 서에도 같은 구조적 난관이 있다. 독서를 하는 이유는 지혜를 쌓고 수준 높은 간접경험을 위한 것인데, 독서 자체가 지혜와 경험을 요구한다.
영국의 작가 존 해링턴(John Harington, 1561~1612)은 이렇게 말했다.
“책은 지혜가 없는 사람에게 지혜를 주지 않는다. 독서는지혜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에게 지혜를 더해준다(Books give not wisdom where was non before. But where some is, there reading makes it more).”
에즈라 파운드는 이렇게 말했다.
“깊이 있는 책에 나오는 내용 중에 적어도 일부를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그 책을 이해할 수 없다(No man understands a deep book until he has seen and lived at least part of its contents).”
‘빈익빈 부익부(貧益貧富益富)’를 벗어나는 길은 독서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요, 한 푼 두 푼이 모여 억만금이 된다. 일확천금을 꿈꾸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저축하는 게 살길이다. 쉬운 책부터 시작해 조금씩 어려운 책을 읽는 게 상책이다. 단순히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책과 달리 지혜를 위한 책은 쉬운 책마저도 독서의 고통이 따르지만 말이다.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을 읽을 때 지나친 저속이나 과속의 위험성이 있다.
“너무 빨리 읽거나 너무 느리게 읽으면 아무것도 이해 못한다(When we read too fast or too slowly, we understand nothing).”
행복과 진리는 항상 지척에 있다. 신문에 애서가, 독서가의 길이 있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주장했다.
“아무것도 안 읽는 사람이 신문만 읽는 사람보다 교육 수준이 높다(The man who reads nothing at all is better educated than the man who reads nothing but newspapers).”
그러나 이번만큼은 제퍼슨이 틀렸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읽을 수 있는게 신문이요, 전문가들이 알아야 할 새로운 내 용도 소개되는 게 신문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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