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새들의 왕 까마귀
제우스 신은 새들이 지금보다 더욱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새들의 왕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새들을 모아 놓고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새를 뽑기로 했습니다. 제우스 신은 헤르메스 신을 보내서 이 세상의 모든 새들을 신전으로 불렀습니다.
“새들은 모두 나의 신전으로 모이도록 해라. 수많은 새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뽑아 너희들의 왕으로 삼겠다.”
그 소식을 들은 새들은 몸을 아름답게 단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울긋불긋 깃털을 가진 원앙새, 눈처럼 하얀 깃털을 가진 백조, 화려한 꼬리를 가진 공작새를 비롯해 온갖 새들이 부지런히 깃털을 다듬었습니다.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새까만 까마귀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들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까마귀는 새들의 왕이 되고 싶었지검은 몸으로는 도저히 그렇게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까마귀는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다른 새들이 지나다니는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형형색색의 깃털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깃털로 몸을 치장했습니다.
드디어 숲 속의 모든 새들이 신전으로 모였습니다. 천천히 새들을 둘러 보던 제우스 신이 까마귀를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가장 아름답구나. 너를 새들의 왕으로 삼겠다.”
제우스 신은 알록달록한 깃털로 치장한 까마귀를 왕으로 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에 동의할 수 없었던 다른 새들은 까마귀의 몸에 붙어 있던 자신의 깃털을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까마귀는 다시 예전의 까만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한때 ‘된장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죠. 된장녀는 웬만한 한 끼 밥값에 해당하는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시며 명품 소비를 선호하지만 정작 자신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기에 부모나 남자친구의 경제적 능력에 소비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젊은 여성을 빗댄 말입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따르면 된장녀라는 단어는 2005년 한 주간지에 스타벅스 커피에 빠진 20~30대 여성에 대한 특집기사가 실리고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2006년 7월 한 네티즌이 올린 ‘된장녀의 하루’라는 글과 ‘된장녀와 사귈 때 해야 되는 9가지’라는 인터넷 단편 만화가 된장녀를 둘러싼 논란에 불을 붙였죠. 단순히 스타박스 커피를 마시거나 해외 명품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된장녀라고 공격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입니다. 이런 논란을 통해 분명해진 한 가지는 된장녀냐 아니냐를 구별 짓는 중요한 잣대가 본인의 경제적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본인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소비를 일삼는 여성이 된장녀라는 것이죠. 어쨌거나 된장녀의 소비 형태는 비합리적인 ‘과시 소비’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과시 소비는 상류층 사람이 과시욕이나 허영심에서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소득 수준이 낮은 층의 모방 소비를 불러일으켜 나라 전체를 과소비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현상으로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이 주장한 경제 이론입니다. 과시 소비 대상으로 대표적인 게 명품이죠.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명품은 ‘그림의 떡입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짝퉁’입니다. 시중에는 겉으로 보기에 명품과 다를 게 없는 짝퉁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짝퉁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소비하면서 ‘짝퉁 현상’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명품을 복제한 짝퉁 물건들이 시장에 쏟아질 때 그 부작용이 심각하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짝퉁이 만들어지는 가장 큰 이유를 생산자와 소비자 입장으로 나눠 설명해 볼게요. 우선 생산자 입장에서는 상품을 통해 얻게 될 ‘기대 이익’이 가짜로 판명됐을 경우 지불해야 하는 ‘기대 비용’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모방 소비, 과시 소비가 만연한 상황에서 짝퉁은 적은 비용으로 큰돈을 벌게 해 주는 요술 방망이가 될 수 있습니다. 가짜에 대해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가짜가 들통 났을 경우에 지불하게 되는 기대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줍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는 경쟁심과 ‘남들도 사는데 무슨 문제냐’라는 심리가 작용해서 값비싼 진짜 명품 대신 짝퉁을 구매한다고 합니다.
자기를 잃어버린 자기 과시
짝퉁은 나라 경제를 좀먹는 부정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이를 ‘외부비경제’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고도 그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짝퉁 생산자는 진품 생산자의 매출이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을 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짝퉁 수요가 커질수록 진품을 만드는 기업은 물건이 팔리지 않아 적자를 내고 최악의 경우 공장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짝퉁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서 진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손해를 끼치죠. 짝퉁으로 인한 외부비경제는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개발하려는 의욕을 꺾고 진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만들어 결국은 경제 전체를 멍들게 합니다. 연구비로 1억원을 들여 만든 반도체 칩이 100만원짜리로 마구 복제되는 일이 묵인 또는 허용된다면 더 이상의 연구 개발과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겠죠?
그렇다면 짝퉁을 추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앞으로의 기대 이익이 기대 비용보다 크기 때문에 짝퉁이 판을 친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답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대 이익을 낮추거나 기대 비용을 크게 해서 짝퉁으로 이익을 남기는 소지를 없애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소비자들이 과시 소비보다는 실속 소비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리고 짝퉁 제조업자에게 보다 무거운 처벌을 가하는 법령을 만든다면 짝퉁이 설 땅은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요?
베블런 효과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기 마련입니다.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란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베블런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는 명품입니다. 명품의 가격은 자꾸 오르는데 수요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이 1899년 자신의 저서<유한계급론(The Thory of Leisure Class)>에서 처음 사용한 이 말은 ‘상층계급의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자각 없이 행해진다“ 라는 말한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과시 소비는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시작되지만 주위 사람들이 이를 흉내 내면서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모방 소비가 나타난다는 것이죠. 모방 소비는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의 비슷한 옷차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특정 상품을 많이 소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상품을 덩달아 구매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된장녀’라든지 ‘노스페이스 열풍’처럼 최근의 상식을 벗어난 소비 형태를 100여년 전의 베블런이 예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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