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타= 이영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 선언 후폭풍이 거세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 25% 부과는 물론 자동차·반도체·가전 등도 추가될 전망이어서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철강업계와 산업계 전반에 트럼프발(發) 관세 쇼크가 엄습하고 있다.
당장 철강업계는 물론, 배터리·자동차·가전 업계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2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를 적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10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치는 모든 국가에 적용되며, 어디에서 오든 상관없이 모든 국가가 대상"이라며 "미국에서 생산된 경우 관세는 없다"고 못박았다.
특히 그는 "한국,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회원국, 일본, 영국 등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때 25% 관세 예외를 적용한 국가와의 합의가 국가 안보 우려를 해소하는데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대안을 제공하지 못했다"면서 "3월 12일자로 각국과의 기존 합의를 폐기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국은 지난 트럼프 정부 1기 때는 협상을 통해 대미 철강 수출 제품 263만톤(t) 물량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받았다. 하지만 이번 행정 명령으로 인해 수출량 제한 조건으로 관세 면제를 받아왔던 한국 철강 제품들도 25% 관세가 적용된다.
한국은 캐나다, 브라질, 멕시코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철강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의 국내 기업들은 지난해 미국에만 293만t을 수출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 전체 철강 수출액 중 미국 비중은 최근 몇 년간 연평균 13%에 달했다.
이번 조처로 국내 철강업계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중국산 저가 철강의 전 세계 공급 과잉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25% 관세 부과까지 더해질 경우 수익성 악화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철강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 하는 동시에 미국 현지 생산 기지 건설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미국 내 생산기지 신설을 두고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제철의 경우 미국 루지애나주에 30억달러 규모의 제철소 설립을 논의 중이다.
타격을 입는 건 철강업계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앞으로 4주 동안 아마도 매주 관세 등 무역 관련 회의를 할 것"이라며 "철강과 알루미늄뿐 아니라 반도체와 자동차, 의약품에 대해 들여다볼 것이며, 그 외 다른 두어 개 품목에 대해서도 볼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모두 우리나라로 많은 일자리를 가지고 오는 전제"라며 "자동차는 매우 크고 중요한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와 반도체도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 국내 기업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북미 지역 매출을 별도 공시한 100개사를 분석한 결과, 반도체·정보기술(IT)·전기전자 기업의 북미 매출은 지난 2023년 3분기 누적 262조2714억원에서 지난해 3분기 누적 313조5231억원으로 1년 사이 19.5% 증가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 기준 북미 매출 비중을 전체 매출의 58.8%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 3분기 미국 매출 27조3058억원을 기록하며 전년(9조7357억) 대비 13.4% 늘었다.
삼성전자 역시 같은 기간 미주 지역 매출이 68조2784억원에서 84조6771억원으로 24% 늘어났다.
특히 자동차 업종은 한국의 대미 수출 1위 품목으로, 현재 국내 생산 차량의 절반 가량이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된 자동차는 143만2713대로, 전체 자동차 수출물량인 278만2612대 중 51.5%를 차지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1∼3분기 북미에서 매출 57조3826억원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 동기(49조509억원) 대비 17%(8조3317억원) 증가한 수치다. 기아도 같은 기간 43조7245억원에서 48조9473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상승하며 북미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경우 수출에 제동이 걸린 것도 문제지만, 자동차를 만들 때 한국 내 제철소에서 생산된 철강을 미국으로 들여와 생산하고 있어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가 치명타가 될수 있다. 자동차 1대를 생산할 때는 통상 철강 1t 및 알루미늄 250㎏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국내 기업으로부터 철강을 수입해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만드는 삼성과 LG 등 가전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당장 업계는 미국산 강판 구매 확대 등의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관세가 부과될 시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반도체 업계도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부가가치 인공지능(AI)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관세 부과는 악재로 작용할수 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철강업계는 내수 부진과 건설 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중국산 철강재의 저가 공세와 미국 관세까지 더해져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며 "철강은 물론 자동차·반도체·가전 등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계 전반에 대한 정부와 각 기업의 총체적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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