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 뉴스가 종교의 탈을 쓰고 행세를 한다. "아침기도는 간략한 아침 뉴스로, 저녁기도는 저녁 종합 뉴스"로 단 1초도 어긋나지 않고 매일 같은 시간 뉴스는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우리는 "뉴스에서 계시를 얻기 바란다. 누가 착하고 누가 악인인지 알기를 바라고, 고통을 헤아려볼 수 있기를 바라며, 존재의 이치가 펼쳐지는 광경을 이해하길" 희망한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이번에는 종교의 지위를 누리는 뉴스에 주목했다. 뉴스의 시대에 뉴스는 신앙의 빛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쏟아진다. 우리는 마치 신자가 예배 시간을 챙기듯 틈틈이 하던 일을 멈추고 널려있는 뉴스를 받아들인다.
문제는 뉴스가 범람하는데 누구도 뉴스가 "우리의 세계관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라고 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의 현실 감각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언론 매체의 능력에 대해 어떤 지도도 받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뉴스를 탐독한다. 사건과 사고는 언제 어디서고 발생할 수 있다. 평화로운 곳에 앉아 뉴스를 확인함으로써 액운이 자신을 비켜갔다는 것에 잠시나마 안도한다. 또 연쇄 살인범, 기근, 홍수 등 자극적인 뉴스를 소비하며 당장 자신 앞에 놓인 문제와 불안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보통은 과연 이런 식의 뉴스 소비가 사람들을 더 지혜롭게 만들었겠느냐면서 뉴스의 시대에 건강하게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한다.
보통의 통찰이 돋보이는 부분은 '사실'보다 '편향'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기관 내부에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사실'보도가 가장 품격 있는 저널리즘이라는 편견이 광범하게 퍼져 있다"면서 "정작 문제는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빗길 교통사고, 3명 사상', '정부 지출 확대' 등 그 맥락과 의미를 깊이 파악하기 어려운 단신 기사보다 비록 "악의적 의제, 거짓말, 권위주의적 시도"로 불리지만 적어도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하는" 편향적인 시각의 기사가 낫다는 의미다.
'자유'에 대한 맹신도 지적한다. 그는 "무엇이건 발언하고 출판할 자유가 문명 세계의 당연한 동지"라고 생각하지만끊임없이 기사를 사방에 뿌리는 이자유가 사람들 대다수를 오히려 "혼란스럽고, 따분하고, 정신 사납게"해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뉴스는 또 사람들에게 생각하기 임무를 떠넘기게 한다. 언론이 "중요한 문제에 대한 복잡하면서도 지적인 논평을 생산해내는 일을 자기네 직원들에게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고 "은근히 암시"하면 사람들은 "뉴스거리를 판정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권위에 눌려 뉴스를 "회의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독립적인 사고로 뉴스를 읽어내라는 것이다. 그는 "먼저 자신만의 생각을 잉태시킬 만한 인내심 많은 산파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단단한 무엇을 하나도 갖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보통은 정치, 해외, 경제, 셀러브리티, 재난, 소비자 정보 등 각 분야의 뉴스를 분석해 뉴스의 역할과 이를 읽어내는 방법을 하나하나 짚었다.언론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언론인과 뉴스를 의심하는 독자, 뉴스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지성을 키우고 싶은 이들에게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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