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Out Of Rosenheim, Bagdad Cafe, 1987, 감독: 퍼시 애들론)
사 막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텅스 블루 - 파리 지하철 공사에서 공모한 시 콩쿠르에서 8천 편의 응모작 중 1등 당선된 시
이 시는 시인 류시화가 전 세계 유명, 무명 시인들의 시 77편을 엮어 만든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2005, 오래된 미래)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사막과 두 여자
여기 사막에서 만난 두 여자가 있습니다.
고달프고 닫힌 공간인 사막은 두 여자에겐 외롭고 꿈이 없는 삶의 무대입니다. 야스민(마리안느 세이지브레트)은 뒷걸음질로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갑니다. 브렌다(CCH 파운더)는 뒷걸음질로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도 똑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야스민은 사막을 지나가다 사막에 사는 브렌다를 만나 우정을 나누고 진심을 보여줍니다. 야스민의 사랑과 배려에 브렌다가 공감하며 소통하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바그다드 카페’입니다.
미국 여행 중인 야스민은 남편과 다투고 사막 한가운데 내버려집니다. 끝도 없는 모래만이 이어질 것 같은 사막에서 야스민이 발견한 것은 주유소와 모텔을 겸한 ‘바그다드 카페’입니다. 카페에 도착한 야스민은 여주인 브렌다를 만납니다. 무능력한 남편을 내쫓은 브렌다는 삶에 지친 나머지 눈물을 흘리다 야스민을 마주하게 됩니다. 야스민은 땀을 닦으며, 브렌다는 눈물을 훔치며 첫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카페의 주인인 브렌다는 비록 손님으로 온 야스민을 호의적으로 대하지 못합니다. 게으르고 무기력한 남편, 카페나 모텔 일은 전혀 돕지 않는 아들과 딸, 그리고 돌봐야 할 손녀까지 있는 브렌다에게 여행을 다니는 유럽의 뚱뚱한 백인 아줌마가 반가울 리가 없지요. 게다가 이 백인 여성 야스민은 자기 자식들에게 다정다감하며 친하게 지내기도 하고 자기가 없을 때 시키지도 않은 카페 대청소를 하기도 합니다.
브렌다는 자기의 울타리를 침범당하는 느낌입니다. 가족이 있지만 철저하게 혼자 생활하고 스스로 돌봐온 생활에 타인의 관심과 손길이 낯설기만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따뜻함에 본능적으로 경계하는 것이지요.
카페 바그다드에는 또 다른 식구들도 있습니다. 카페 일을 도와주는 원주민 청년, 캠핑카에 살며 야스민의 초상화를 그려주다 사랑하게 되는 화가 루디, 손님들에게 몸을 팔기도 하고 문신을 새겨주기도 하는 여자 데비...... 모두 인생의 주연에서 밀려난 엑스트라 들입니다. 특별한 희망과 목적도 없는 삶을, 시간을 바그다드 카페에서 죽이고 있습니다.
야스민의 사랑과 배려와 관심은 카페 식구들의 마음을 열게 되고 틈틈이 배운 마술 쇼를 통해 카페가 활기를 띄게 되자 얼었던 브렌다의 가슴도 눈 녹듯이 녹게 됩니다. 카페의 마술 쇼는 어느덧 손님들에게 소문이 나고 바그다드 카페는 활기가 넘칩니다. 흥겨운 음악과 유쾌한 마술, 그리고 한 잔의 따뜻한 커피는 오랜 여행에 지친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사막의 오아시스 노릇을 하게 된 셈이지요. 그 오아시스는 외롭고 메마른 삶에 익숙한 카페 식구들에게도 활력과 즐거움을 줍니다.
상처받고 지친 삶의 조각들이 모여 있는 바그다드 카페에 야스민의 사랑으로 치유 받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가족과 친구가 있어도 혼자만의 삶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때때로 외로움과 고독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새로운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갈망하면서도 쉽게 다가서질 못합니다. 그래서 얼굴을 숨긴 채 인연을 맺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속에서 ‘친구’를 찾게 되는 게 아닐까요. 각박한 삶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임을 실천하는 야스민이 사랑은 감정의 사치라고 여기는 브렌다를 포용하는 영화입니다. 죽기 전에 열 번쯤 보셔도 또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부조화 속의 조화
영화 제목이 왜 하필이면 ‘바그다드 카페’ 일까요?
통일 독일 이전 서독감독(퍼시 애들론)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입니다. 미국의 적대 국가 중 하나인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제목으로 쓴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국 모하비 사막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 낯선 조합입니다.
순박한 유럽 백인 여자 야스민과 까칠한 흑인 여자 브렌다,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현실의 불통과 단절을 마술이란 환상을 매개로 소통하는 일, 아이러니 합니다.
매춘부 데비가 즐겨 읽는 책인 토마스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어색합니다.
브렌다 아들 살라모의 피아노 연주곡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1번, 생경합니다.
삶이란 이런 부조화들을 조화롭게 엮어가는 게 아닐까요?
바그다드 카페처럼......
팁) 영화 전편에 흐르는 주제가 제베타 스틸의 ‘콜링 유(Calling You)'는 몽환적이고 쓸쓸한 분위기로 건조한 사막과 잘 어울립니다. 우리나라 개봉(1993년)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가사를 소개합니다.
Calling You
A desert road from Vegas to nowhere
Some place better than where you've been
A coffee machine that needs some fixing
In a little cafe just around the bend
(라스)베가스에서 누구도 갈 수 없는 곳으로 난 사막 길
당신이 머물렀던 곳 보다는 좋은 곳으로
손 볼 곳이 몇 군데 있는 커피 기계
굽이를 바로 돌면 있는 작은 카페에서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난 당신을 부르고 있어요
들리지 않나요
난 당신을 부르고 있어요
A hot dry wind blows right thru me
The baby's crying and can't sleep
But we both know a change is coming
Coming closer sweet release
나를 스쳐 지나가는 뜨거운 마른 바람
아기가 울고 있어서 잘 수가 없어요
하지만 우린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요
달콤한 안녕이 다가오고 있는데
I am calling you
[저작권자ⓒ 한스타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