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사] "왜 형을 용서할 용기가..."- '영웅본색'

서기찬 / 기사승인 : 2016-04-18 10: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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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명대사] (47)


"형은 새 삶을 살 용기가 있는데 넌 왜 형을 용서할 용기가 없는거야? 왜?"
- '영웅본색(英雄本色, A Better Tomorrow, 1986, 재개봉 2016, 감독: 오우삼)' 중에서 소마(주윤발)가 아걸(장국영)에게.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네 친구들은 택(박보검)이네 방에서 함께 비디오를 보면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합니다. 영화는 대부분 1980년대 트랜드나 정서를 대표하는 소재들입니다. 그 중에서 '영웅본색'은 네 친구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의 하나지요. 80년대 아이콘이 된 롱코트를 입은 주윤발의 쌍권총, 성냥개비 씹기, 달러로 담뱃불을 붙이기 등... 장국영이 부르는 가슴 적시는 주제가 당년정(當年情)이 감동을 더 합니다.


'영웅본색'은 칼 대신 총을 든 현대판 무협영화로 홍콩누아르의 시발점이 된 작품입니다. 1997년 중국 반환을 10여 년 앞둔 도시 홍콩의 불안을 필름누아르식 액션과 장철식의 전통 무협 영웅 서사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남자(형제)들의 유대와 의리, 암흑가의 배신과 복수를 재료로 슬로모션, 점프컷, 감상적인 음악 등의 영화적인 양념을 홍콩누아르란 그릇에 잘 버무렸습니다. 특히 비 내리는 현란한 총격전, 강한 대비의 조명 등의 스타일은 이후 홍콩 및 아시아 액션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 개봉은 1987년 6월 서울 화양, 대지, 명화극장.
당시에는 별 반향을 못 얻다가 이후 재개봉관과 동시상영관을 돌며 뒤늦게 큰 인기를 끌었고 주윤발, 장국영 등의 홍콩 스타는 80~90년대 한국 청소년들의 우상이 되었지요.


영화는 중국 반환이란 괴물앞에 놓인 도시 홍콩과 암흑가 인물들을 통해 홍콩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필름누아르의 영향 아래 있는 이 작품은 먼저 돈을 위해서는 배신도 서슴지 않는,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진 시대’라는 홍콩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보여줍니다.영화 속 주요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눈으로 홍콩을 바라봅니다. 배신자 아성은 불안한 도시 홍콩의 한탕주의에 편승해 아호와 소마를 배신하고 아걸을 함정에 빠뜨리는 비열한 인물입니다. 형사 아걸(장국영)이 전과자인 형, 아호(적룡)를 증오하는 까닭은 부패한 홍콩에 대한 강박적 분리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아성과 아걸의 명확한 대립구도 안에서, 아호가 끝내 홍콩을 떠나지 않는 것은 그가 아걸을 통해 홍콩의 긍정적인 미래를 보기 때문입니다. 아호는 암흑가의 큰형님이었을 때도 늘 동생 아걸의 올바르고 발전적인 앞날을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했습니다.
그에 비해 소마(주윤발)는 좀 복잡합니다. 그는 아호와 마찬가지로 의리와 같은 전통적인 강호의 가치를 중요시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땅에 떨어진 홍콩의 현실에 절망하기도 합니다. 소마는 자본주의 홍콩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사회주의 중국에 편입될 미래를 한탄하고 과거 홍콩(혹은 사라진 과거의 중국)의 영광을 찾을 수 없다면 이 도시를 떠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한탕주의와 배신이 만연한 홍콩의 암흑 사회에서 우정, 가족, 의리와 같은 낡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장철식의 무협영화의 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의 엔딩에서 아성을 죽인 아호가 스스로 동생의 수갑을 차고 “네가 가는 길이 옳다”고 아걸에게 말하는 것은 바로 홍콩의 ‘더 나은 내일’에 대한 감독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어 제목이 'A BetterTomorrow'인 이유입니다.


* 팁: 홍콩누아르


이 영화를 단순히 범죄 액션물이 아닌 필름누아르의 계보 아래 두는 까닭은 무엇보다 영화 고유의 스타일과 도시에 대한 어두운 비전에 유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필름누아르는 1930~40년대 미국인들의 냉소와 절망을 암흑가의 배신과 파멸의 서사 안에 담아냈고, ‘검다(’noir)란 이름처럼 어두운 밤, 강한 대비의 조명, 사선 및 수직 구도 등으로 도시의 불안과 무력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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